제 2전시실
제 2전시실 민속문화와 실향민문화가 공존하며 성장한 도시, 속초
제2전시실에는 속초의 어촌문화와 실향을 딛고 세운 도시, 속초에 대한 내용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어촌문화에서는 동해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살아온 어부들의 생활모습이 생생하게 재현되어 있으며 어로도구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실향을 딛고 세운 도시, 속초에서는 6·25전쟁을 거치며 이북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의 생활모습과 더불어 어업과 관광산업으로 성장한 속초의 모습을 유물과 영상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촌문화 바다가 삶의 터전인 사람들
어로작업 및 어업민요 그물로 고기를 낚는 조업모습이 모형으로 전시되어 있으며 어부들이 어로작업을 하면서 불렀던 어업민요도 들어볼 수 있어서 어로작업 모습을 생생하게 관람할 수 있습니다.
동해바다, 삶의 터 어부들의 생활상을 사진으로 전시해 놓았으며 속초수산업에 대한 내용이 개괄적으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어로도구 어촌에서 많이 쓰는 작살, 통발, 망태, 갈구리, 산대, 낚시 자망 등의 어로도구를 전시해 놓은 곳으로 생소한 어로도구들에 대해 알 수 있어 마치 바다에 와 있는 느낌을 자아냅니다.
실향을 딛고 세운 도시, 속초 바다가 삶의 터전인 사람들
창이배, 고깃배에서 생명의 배로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3?8선 이북에 살던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고향을 떠나 낯선 곳으로의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그들은 고기잡이배였던 창이배에 간신히 몸만 실은 채 남쪽으로 내려왔습니다. 피난민들에게 창이배는 목숨을 구해준 ‘생명의 배’였습니다. 이 배가 닿은 곳이 바로 ‘속초리(현 속초시청 주변 구도심 일대)’입니다.
청호동, 임시 거처에서 영구 터전으로 갑작스럽게 터진 전쟁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었기에 피난민들은 임시 터전을 마련해야 했습니다. 3·8선 이북에서 온 사람들은 속초로 모여들었고, 주인 없는 땅인 청호동 모래톱 위에 임시 거처로 움집이나 판잣집을 짓고 생활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부는 이들이 정착할 수 있도록 피난민 등록 등을 통해 도움을 주었습니다. 곧 끝날 거라고 기대하며 시작한 이들의 피난살이는 벌써 반백 년이 흘렀고, 이들이 사는 청호동은 나이 많은 남성을 뜻하는 함경도 사투리 ‘아바이’를 본뜬 ‘아바이 마을’이라는 별칭으로 속초의 명소가 되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꿈꾸며 흘린 그들의 땀과 눈물이 오늘날의 속초를 일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속초, 어업 도시에서 관광 도시로 청호동에 자리를 잡은 피난민은 속초의 구성원으로 주로 어업에 종사했습니다. 갯배를 이용하여 도심을 오갔으며, 생활필수품과 명태 오징어를 날랐습니다. 청호동 사람들에게 갯배는 단순한 교통수단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부터 명태덕장으로 유명했던 속초리는 청호동 사람들의 노력이 더해지면서 명태와 오징어를 중심으로 한 어업 도시로 성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어획량이 감소한 현재의 청호동은 사양길에 접어든 어업을 뒤로한 채 관광명소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설악산을 비롯하여 동해 바다와 인근의 호수, 온천 등 천혜의 자연자원을 가진 속초 또한 관광 도시로 발돋움하고 있습니다.
모두의 고향이 된 속초 “통일이 되면 고향 땅을 밟을 수 있다.” 귀향을 기다리던 실향민들에게 이러한 희망은 삶의 원동력이었습니다. 통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지금, 그들은 망향동산을 만들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고 있습니다. 속초의 실향민. 그들에게 속초는 제2의 고향이며, 그들은 더는 피난민이 아닌 속초 사람입니다.